똑똑한 바보들

일단 이글루스에 올라오는 뉴스밸리 글을 읽어보면 일리는 있어 보인다. 아니 겉으로 보면 이글루스에 올라오는 뉴스밸리 글은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겉으로 보면 그렇다. 그 속을 보면 어떤가? 엉터리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이글루스에 올라오는 뉴스밸리 글의 본질은 간단하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자는 거다. 뭐 정리하면 이 정도 아닌가?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 입장이라면 왜 그들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글루스에 올라오는 글은 모두가 엉뚱한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지지층에 대한 진지한 설득 보다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본질은 외면하고 그 껍질에만 눈을 돌리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게 사람이다. 사람의 눈과 머리는 대개 생각 이상으로 몹시 단순하고 간사하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생각만 하고 원하는 결과로 판단한다. 그리고 혼자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과를 찾았다고 자평한다.

이글루스의 뉴스밸리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글을 올리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현실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간의 의견 차를 좁힐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서로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부터 스스로의 작은 글솜씨를 착각해서 그것만으로 세상을 쥐락펴락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헛된 객기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금 민주당의 오판을 유도하거나 각종 이익으로 국민들의 눈을 꽤나 효과적으로 속이고 있다. 표심은 의외로 간사하고 단순하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대다수 국민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길 원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그런 국민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마치 그것이 현실이고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보다는 이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현실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정당인 민주당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민주당에 눈을 돌렸을 때 바로 그 민주당이 꽃보다 남자처럼 매력적으로 보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이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반MB정서를 가진 국민들 입장에선 지금의 민주당은 한나라당 안에 있는 박근혜보다도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집권 가능성이 있는 민주당이 차기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이기는 것이 필요하고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차기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현재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지지층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하는 것이다.

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만을 고집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사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선 분명한 확신이 서있고 그와 더불어 평소 그들이 고민하고 있던 대한민국이 가진 문제의 속살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을 통해 숨김없이 낱낱이 들여다 본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하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문제점은 막상 그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지지층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와는 거리가 있다. 한마디로 비판의 핀트가 안맞다는 것이다. 이건 컨택의 문제다. 그래서야 아무리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해 비판을 해본들 그것으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요즘 이글루스에 올라오는 뉴스밸리 글을 볼 때마다 다들 참 영양가 없는 소리만 한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부조리하고 부패하다고 비판하면 뭐하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의 진짜 핵심은 그게 아니다. 다들 남의 다리 긁는 소리 하는 셈이다. 남의 다리를 아무리 긁어봤자 내 다리가 시원해질까? 그런데 아직 아무도 그걸 모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도덕적이고 깨끗해서 정권을 잡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약점은 부패가 아니라 무능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자신들을 유능한 정권이라고 선전하면서 성과주의를 내세우는데 그렇다면 그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무능을 공격해야지 왜 자꾸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도덕성과 부패로 공격하는지 모르겠다.

만약 국개론자들과 민주당이 정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을 쓰고 싶다면 제대로 써야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란 메세지를 이미지 마케팅해서 그것을 전국민적으로 확산시켜는 전략으로 결국 정권을 잡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무능한 정권"이란 메세지를 이미지 마케팅해서 그것을 전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인식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바로 이를 위해 임팩트 있는 메세지를 통해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이미지 마케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네거티브 전략으로는 절대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결국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포지티브 전략을 써야 한다. 그리고 오바마의 "예스 위 캔"이야말로 바로 임팩트 있는 메세지로 미국의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었던 전형적인 포지티브 이미지 마케팅 전략이었다. 오바마는 "예스 위 캔"이라는 포지티브한 오바마 이펙트로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문득 재작년 대선이 시작되었을 때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결국 헤겔이 역사철학을 통해 말했듯이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처음엔 비극일지라도 또다시 그런 비극을 반복한다면 그건 더이상 역사의 비극이 아니라 그저 역사의 파르스일 뿐이다.


==================================================================================================================

똑똑한 바보들


세상에는 똑똑한 바보들이 참 많다. 물론 나도 그 똑똑한 바보에 해당될 지도 모른다. 요즘 내 글이 정치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인정한다. 그리고 반성한다. 글을 쓸 때 객관성을 상실하고 정파적 이익에 집착하게 되면 주관적인 희망으로 현실예측을 왜곡하는 법이다. 나는 얼마전부터 특정 캠프를 위해 기계적인 음모를 많이 생각했다. 그것이 어쩌면 하늘의 기휘를 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얼마 남지 않은 대선 나름대로 최선은 다 할 생각이다.

다시 똑똑한 바보들에 대해 얘기해보자. 똑똑한 바보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똑똑한 바보들의 과대망상이 현실과 괴리되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자각하기 시작하면 똑똑한 바보들은 그런 현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깊은 과대망상에 빠져 현실을 도피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물론 똑똑한 바보들은 자신이 똑똑한 바보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한방을 노리는 사람은 끝까지 그 한방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또 다른 한방을 노리는 것이다. 그게 바로 스타일의 차이다. 공부 스타일이든, 정치 스타일이든, 이렇게 스타일은 그 사람을 평생 따라다니는 법이다.

지난 총선 얘기를 좀 해보자. 지난 총선을 돌이켜 보면 3월 12일 노무현 탄핵 직후 한나라당은 7%도 안되는 지지율로 폭락했다. 총선이 탄핵 반대와 탄핵 찬성의 구도로 표심이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 열린우리당이 관리만 잘 했어도 개헌선을 넘는 국회의석 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똑똑한 바보들이었다. 3월 12일부터 4월 15일 까지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들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 바로 열린우리당의 문제였다. 탄핵은 일시적인 바람이다. 따라서 국민적 분노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동영의 노인폄하 발언이 터졌다. 한나라당을 지지할 명분을 찾지 못했던 영남이 그 것을 핑계로 다시 한나라당으로 뭉쳤다.

비극과 희극. 처음 탄핵을 맞았을 때 열린우리당은 비극적이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희극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곧 역전됐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비극은 그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안겨다 주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희극은 그들에게 뼈아픈 정치적 대가를 치르게 해주었다. 정치공학의 리스크 컨설턴트로서 공포정치 마케팅을 얘기해보자. 공포를 마케팅하는 정치는 그 한계효용을 끊임없이 체감해야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간단히 말해 국민들이 오래 분노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정치적 고통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탄핵 직후 한 주 두 주가 지나면서 열린우리당은 점점 더 희극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총선에 관한 낙관적인 전망이 열린우리당을 맴돌았다.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열린우리당이 즐거워하기 시작하면 벌써 열린우리당의 권력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임을 열린우리당은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한 번 웃을 때 마다 열린우리당의 표는 점점 한나라당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권력적이기 위해서는 비극적이어야 한다. 국민들이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억지로라도 비극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그러지 않았다. 반면 한나라당은 탄핵 이후 한나라당의 비극을 끊임없이 말했다. 한나라당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 제발 살려달라. 개헌선을 지킬 수 있도록 한나라당을 찍어달라. 박근혜는 그렇게 한나라당의 비극을 노래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끝났다고 히히덕 거리며 좋아했다. 처음의 비극적 태도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열린우리당은 희희낙락하는 희극적인 자세로 총선에 임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달랐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한나라당의 비극을 노래했다. 그리고 처음의 예측과는 달리 개헌선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총선이 4월 15일이 아니라 4월 30일이었다면 한나라당이 다시 국회에서 과반이 넘는 의석을 가졌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대선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이번 대선은 한마디로 이명박 탄핵놀이라고 규정지을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바로 이명박 탄핵놀이가 너무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올 해 내내 이명박 탄핵놀이를 계속해왔다. 그래서 이젠 이명박 탄핵놀이가 주는 정치적 쾌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 이명박을 보면 누가 생각이 나는가? 바로 노무현이다. 지난 대선으로 되돌아가보자. 지난 대선에서 끊임없이 두들겨맞는 방식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다. 괜히 노명박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에서 끊임없이 두들겨맞은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이제 조금 눈치를 챘나? 바로 이명박이다. 이명박이 바로 지난 대선의 노무현처럼 박근혜에게 맞고 정동영에게 또 맞고 이회창에게 또 맞은 것이다.

다들 박근혜가 왜 선거 때마다 힘을 썼는지 모르고 있다. 박근혜는 바로 약자의 전략을 사용했다. 탄핵 때도 지방선거 때도 모두 한결같이 약자의 전략을 썼다. 다시말해 박근혜는 유태인의 전략을 써왔던 것이다. 바로 박해를 받는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유태인의 전략이 박근혜의 정치적 포지션이었다. 그런 점에서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는 이번 대선을 결정할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회창은 지금 5년 전 노무현을 두들겨 패던 관성적인 습관을 또 들고 나왔다. 다만 이번엔 노무현 대신 이명박을 두들겨 패고 있는 것이다. 정동영도 마찬가지다.

지금 네거티브를 구사하고 있는 이회창과 정동영의 특징을 한번 보자. 이회창과 정동영 모두 강자의 전략을 쓰고 있다. 다시 말해 네거티브 포지션으로 이명박을 열심히 두들겨 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은 다르다. 이명박은 포지티브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명박은 약자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약자의 전략은 97년 김대중 때도 있었다. 그리고 김대중의 약자의 전략은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다. 다시 말해 김대중도, 그리고 노무현도, 한 일년 열심히 두들겨 맞다가 보니 어느 순간에 대통령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유태인적인, 그리고 기독교적인 대선전략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를 되돌아보자. 유일신교인 기독교도 처음엔 만신전인 판테온으로 관용의 다신교를 믿었던 로마에겐 이단에 불과했다. 그런 기독교가 로마에서 박해를 열심히 받다가 보니 어느 순간 공인이 되고 나아가서는 로마의 국교가 되지 않았던가? 이명박도 마찬가지다. 분명 이명박은 더럽다. so what? 그래서 어쩌라구? 이게 바로 국민들의 표심이다. 이명박은 노무현보다도 맷집이 더 좋았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이 맞았다. 그래서 이제 이명박 탄핵놀이에 국민들이 지루해하고 권태로워 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실 이런 식상함을 만들어준 것이 바로 박근혜라는 사실이다. 이른 시기부터 박근혜가 이명박을 워낙 많이 두들겨 패놨기 때문에 이젠 국민들이 이명박의 부패에 그다지 민감해하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회창과 정동영에게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이명박 더럽다구?  so what? 그래서 어쩌라구? 그거 나 이미 알고 있어. 그래서 도대체 어쩌라구? 박해는 곧 성장이란 건 정치의 철칙이다. 박정희의 정치적 박해가 김영삼을 키웠고 김대중을 키웠으며 김종필을 키웠다. 삼김은 바로 박정희의 정치적 박해가 만든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선악이 교환가치가 되는 것이다. 열심히 박해를 가하다 보면 선이란 것이 어느 순간에 악으로 교환되어 있는 것이다. 또 열심히 박해받다가 보면 악이라는 것도 어느 순간엔 선으로 교환되어 있는 것이다. 안티테제는 때를 잘 잡아서 단 순간에 압축적으로, 또 요약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안티는 기회가 오면 집중적으로 퍼부어서 정치적 생명을 완전히 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순간에 목숨 걸고 끝장을 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 안티가 장기화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선악이 교환되어버리는 교환가치 현상이 생겨나게 된다. 다시 말해 너희 중에 진정 죄 없는 자가 있다면 이 불쌍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식의 반응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 이회창과 정동영이 이명박의 정치적 생명을 끊어버리고 싶었다면 국민들이 나서서 이회창과 정동영 너희 중에 진정 죄 없는 자가 있다면 이 불쌍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이명박에 대한 안티와 박해에 반발하기 전에 먼저 강인한 결단력으로 미리 서둘러서 이명박이라는 사마리아 여인을 돌로 쳐죽여야만 했던 것이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그런데 이회창과 정동영은 우물쭈물 했다. 이회창은 군자연했고 정동영은 국물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리고 이회창과 정동영은 결국 이명박의 정치적 생명을 끊어놓을 수 있는 정치적 타이밍을 놓쳤다. 이렇게 주저하다 보면 결국은 선악의 뚜렷한 구분이 사라지는 법이다. 이명박의 부패를 진정 묻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낙수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방식으로 접근해선 곤란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원폭 한두방으로 보내버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시범을 그래도 한 두번 보여준 정치인이 바로 김영삼이다. 김영삼의 금융실명제나 하나회 숙청이 바로 그렇게 번개처럼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나버린 이명박 탄핵놀이는 이제 더 이상 그 효과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회창 후보에게 bbk와 같은 문제에 더이상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이회창이 이명박을 bbk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근데 그건 정말 큰 이회창의 실수였다. 한마디로 이회창은 이번 대선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까지 말아먹어버린 것이다. 이회창이 표를 벌고 지지율이 올라갔던 건 어김없이 이회창이 국민들에게 동정 받을 때 뿐이었다. 약자의 전략일 때만 이회창은 표를 벌고 지지율을 올렸다. 그러나 이회창은 지금 자아도취 속에 강자의 전략을 쓰고 있다. 성장할 땐 절대로 강자의 전략을 쓰면 안 된다. 대선의 헤게모니를 쥐고 자신의 대세론을 방어할 때도 이명박은 절대로 약자의 전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강자의 전략은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이회창이 강자의 전략을 들고 나왔다는 건 정치적으로 자폭하겠다고 작심한 거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치는 타이밍이다. 그런데 이회창은 정작 강자의 전략을 써야 할 때 군자연했고 약자의 전략을 써야 할 때 강자의 전략인 네거티브를 쓰고 있다. 이래선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이회창은 무조건 포지티브 전략으로 가야만 한다. 다시 말해 남은 기간동안 이회창의 가치에 대해서만 말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팔레스타인이 그랬다. 팔레스타인은 처음엔 강자의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곧 전략을 바꿨다. 유태인들이 침략자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약자의 전략을 구사했다. 그리고 전세계인들에게 유태인들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팔레스타인의 약자의 전략은 비로소 먹히기 시작했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러브앤피스 | 2009/03/11 12:50 | 정치 | 트랙백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RARARARARA.egloos.com/tb/225818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자이드 at 2009/03/11 12:59
잘 읽고 갑니다. 가카정부의 '무능' 을 공박해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런데 부패한 정부는 필연적으로 무능할 수밖에 없다는 논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3/11 18:14
글쎄요. 도덕률과 능력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Commented by kkkclan at 2009/03/22 08:32
팔레스타인에 대한 언급에서 공감이 팍 왔습니다. 한국 진보정당들이 꼭 참고해야 할 사례인 것 같네요.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3/22 11:34
^^;;;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