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나이트와 다수의 힘

다크나이트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저는 과연 차기 시리즈의 배트맨의 적은 누가 될지가 궁금했습니다.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혼돈에서 태어난 순수한 악 그 자체였습니다. 다크나이트에서 볼 수 있었던 조커의 유일한 동기와 목적은 오직 타락, 타락, 타락시키기 위한 시험, 시험, 시험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커는 결국 고담시의 화이트 나이트인 하비덴트를 투페이스로 타락시키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크나이트 이후 새로운 배트맨의 적은 누가 좋을까요? 제 결론은 순수한 선이었습니다. 정말 순수한 선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순수한 선의가 선악이 혼재되어있는 고담시를 파괴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선 인간의 힘을 넘어선 빛의 아우라를 가진 천사나 성자 성녀의 고결한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순수하지 않은 어둠인 배트맨의 잿빛 이미지와 대비되는 빛나는 순수한 하얀 이미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을 절대선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적대자인 배트맨을 절대악으로 낙인찍을 수 있는 굳은 신념이 결국 새로운 절대악을 낳게 되는 모순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순수한 선의로 똘똘 뭉친 그들은 순수한 신의 논리로 고담시에 살고 있는 선과 악의 이중성을 갖고 있는 인간을 심판하려 하지만 고담시에 살고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날벼락을 맞는 기분이 들진 않을까요? 어떤 인간이든 간에 사람들에겐 선과 악 모두가 들어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 사람에게 당신이 갖고 있는 악한 면은 삿된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갖고 있는 악을 도려내거나 당신을 심판하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당신이 무슨 권리로? 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럴 때 순수한 선이 내세우는 것은 언제나 그들의 정의와 그들의 신념입니다. 물론 그 정의와 신념을 관철시킬 수 있는 무기는 바로 다수의 힘과 다수의 힘으로 만들어낸 압도적인 권력이 되겠죠. 그리고 순수한 선은 다수의 힘과 압도적인 권력을 통해 고담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고 그 후 그들의 정의와 신념으로 세운 고담시는 그들의 헤게모니 안에서 영원히 유지되는 유토피아로 완성되는 겁니다. 브루스 웨인은 바로 그걸 막기 위해 배트맨이 되어 나서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절대 신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브루스 웨인에게는 차라리 나는 순수한 악이라고 처음부터 인정했던 조커가 오히려 더 편한 상대일 수도 있습니다.

기실 과거 역사에서 항상 극단주의자가 승리했던 이유는 바로 잘못된 신념에서 시작되는 과격성이었습니다. 그들이 상대방에게 타협이 아닌 굴복을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권력욕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자신의 사상과 신념이 진짜 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순수한 선의 역시 스스로 자신이 무오류성의 절대선임을 주장하며 배트맨의 굴복이 곧 배트맨의 구원으로 이어진다고 굳게 믿고 배트맨을 회개시키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 안으로 들어와라. 그럼 편해질 것이다." 라고 조커처럼 배트맨을 설득하면서 말입니다.

다크나이트를 보면서 브루스 웨인이 조커의 혼돈을 어려워하는 것은 일종의 난해함이 아니라 자신 또한 조커처럼 어둠에 물들어 있다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크나이트에서 브루스 웨인은 화이트 나이트인 하비덴트의 세계로 나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낮의 방탕한 부자의 역할과 밤의 치열한 배트맨의 역할 사이에서 고민하던 브루스 웨인은 결국 하이덴트의 타락을 통해 배트맨의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과 조커는 둘 다 어둠에 감추어진 형체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트맨과 조커가 추구하는 본질은 서로 너무나 달랐습니다. 조커가 배트맨을 완성시키고 배트맨이 조커를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조커가 배트맨을 타락시키기 위한 노림수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배트맨과 조커는 동질이 아닌 고유의 유별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배트맨은 영화의 결말에서 기꺼이 어둠의 기사가 되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다크나이트의 배경이 되는 고담시는 조커가 바라보는 시선처럼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혼돈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고담시에 있는 사람은 각자가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고담시라는 혼돈에서 악만을 발췌하고 있었지만 사실 혼돈 속에는 무수한 악만큼 무수한 선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크나이트를 보면서 저는 배트맨이 혼돈에서 선을 발췌하는 것은 악을 선택하는 것보다 어렵지만 그가 바라보는 무수한 악들 사이에서도 고담시에는 듬성듬성 존재하는 선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선과 악은 일종의 개념으로 발췌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배트맨에게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만약 배트맨이 고담시가 부조리하다고 생각되어지면 그 악을 부수려고 하기 보다는 선을 하나 더 실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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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브앤피스 | 2009/09/18 08:56 | 핫이슈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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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크나이트에 대한 해석
다크나이트와 다수의 힘 - by 러브앤피스 러브앤피스님은 다크나이트라는 영화를 선과 악의 대립으로 보고 계십니다. 또한 영화 속에는 러브앤피스님의 해석을 지지할 만한 근거 역시 있습니다. 그 근거는 집사의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저 세상이 멸망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조커가 그저 세상이 멸망하기를 바랬다고 생각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러브앤피스님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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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나이트와 다수의 힘 - by 러브앤피스다크나이트에 대한 해석 - by 긁적이오공감 신고제도, 아직도 ... more

Commented by Soundwave at 2009/09/18 09:06
땡기는 아이디어이긴 한데, 배트맨 원작에 부합되는 캐릭터가 딱히 없어서 아쉽네요.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18 09:27
^^;;
Commented by 사칙연산 at 2009/09/18 11:46
순수한 선의로 가득찬 배트맨의 적이라면 하나 있습니다.

파란 쫄쫄이 위에 빨간 팬티를 입고 빨간 망토를 휘날리는 변태인데 이름은 슈퍼맨이라고 하지요.(...)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18 12:31
사칙연산/고담시를 이글루스로 바꾸면 더 재미있을 겁니다.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9/09/20 09:45
순수한 선의로 가득한 숲스가 독선 때문에 뱃맨과 한판뜨는 이야기...

기냥 다크나이트 리턴즈 실사화하면 되겠군요 OTL
Commented at 2009/09/20 00: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0 09:57
그렇네요.
Commented at 2009/09/20 00:4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0 09:57
그렇죠.
Commented by 이악물기 at 2009/09/20 01:04
배트맨 비긴즈 말씀하시는줄 알았습니다.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0 09:57
비긴즈와는 거리가 있죠.
Commented at 2009/09/20 02:0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0 09:58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옳지만 결과적으로는 틀린 셈인가요?-_-;;
Commented by otherside at 2009/09/20 04:08
공감은 가지 않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아, 물론 영화 이야깁니다. 이글루스 관련 이야기는 전혀 모르는터라...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0 10:00
사실 이건 영화 감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글 안에 이런저런 코드를 많이 깔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뉴스밸리에 보내려고 했답니다. 고담시 말고도 선과 악을 비롯해서 다른 단어로 바꾸면 더 재미있을 장치들을 많이 깔아서 정작 영화평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Commented by Dead_Man at 2009/09/20 09:07
원작에선 탐정의 이미지가 더 강한지라 [..] 그리고 선의로 가득찬 캐릭이라면 슈퍼맨이나 캡틴 마블이 있는데.. 애초에 배트맨이 감당할수 있는 수준이 아니죠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0 10:01
슈퍼계와 리얼계의 대결은 불가능하죠. 저 역시 슈퍼맨을 염두에 두진 않았습니다.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9/09/20 09:46
비긴즈의 라즈 알 굴과 그림자 군단도 나름대로 자기들은 선을 위해 일한다고 자부하는 극단주의자였죠.
성자의 이미지는 저언혀 아니었지만.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0 10:01
그렇죠.
Commented by 차원이동자 at 2009/09/20 10:04
그 중간에 리들리같은 사람들이 더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해도 괜찮을라나요.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0 10:10
글쎄요.
Commented at 2009/09/20 15: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0 15:41
정말 그렇겠네요.
Commented by 라이칸 at 2009/09/20 16:31
하지만 중요한건

배트맨이 인간중에서 슈퍼맨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거죠.. 렉스 루터 빼고.
배트맨에게는 슈퍼맨이 준 반지가 있거든요. 크립토나이트가 박혀있는..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1 01:12
제가 히어로물은 잘 몰라서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줄은 몰랐네요.
Commented by Bootcamp at 2009/09/20 21:16
다크나이트 리턴즈라는 코믹 북에서는 배트맨이 파워드 슈츠 입고 크립토나이트 반지를 끼고 싸우죠.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1 01:12
그렇군요.
Commented by kykisk at 2009/09/21 18:08
흠...근데 팀버튼의 배트맨2 가 그런컨셉아니었나요?
펭귄이 그런방법으로 배트맨을 몰아붙인것같은데?
Commented by 러브앤피스 at 2009/09/22 15:27
"인간의 힘을 넘어선 빛의 아우라를 가진 천사나 성자 성녀의 고결한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순수하지 않은 어둠인 배트맨의 잿빛 이미지와 대비되는 빛나는 순수한 하얀 이미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을 절대선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적대자인 배트맨을 절대악으로 낙인찍을 수 있는 굳은 신념이 결국 새로운 절대악을 낳게 되는 모순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순수한 선의로 똘똘 뭉친 그들은 순수한 신의 논리로 고담시에 살고 있는 선과 악의 이중성을 갖고 있는 인간을 심판하려 하지만 고담시에 살고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날벼락을 맞는 기분이 들진 않을까요?"

펭귄맨은 이것과는 거리가 있죠. 외적인 이미지부터가 미학적으로 추한 모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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